거시경제학 #4 - 국민 소득 항등식
먼저 지난 포스팅의 내용을 요약하겠습니다. 무인도 경제에서 사람들이 잡은 생선은 자기가 먹거나 남에게 빌려 주었습니다. 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Y는 잡은 생선의 양, C는 자기가 먹은 생선의 양, I는 남에게 빌려준 생선의 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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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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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적인 용어로 바꾸자면 Y는 총생산, C는 소비, I는 투자라고 합니다. I를 투자라고 하는 이유는 - 지난 시간에 보았듯이 - 빌려준 생선이 결국은 경제의 생산력을 키우는 밑거름이 되기 때문입니다. 위의 식은 경제학적으로 어떤 경제의 총생산은 소비와 투자를 더한 것과 언제나 같다는 의미를 같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식을 국민 소득 항등식(National Income Identity)이라고 합니다. 무인도 국민들이 어느날 잡은 생선의 양이 그날 벌어 들인 소득일테니 총생산은 곧 총소득과 같습니다. 따라서 이 항등식은 벌어 들인 생선은 소비되거나 투자된다로 이해하면 됩니다. 한편 위의 식은 아래와 같이 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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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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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변은 잡은 생선 중에 먹고 남은 양이므로 저축(S)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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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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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쓰고 보니 국민 소득 항등식은 저축과 투자가 일치한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치를 보장하는 것은 - 지난 포스팅에서 보았듯이 - 이자율의 자유로운 움직임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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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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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있는 경제
아직 무인도에는 정부가 없지만 경제가 계속 성장하면 정부가 탄생할 겁니다. 현대 정부가 하는 일은 엄청 많습니다. 정부는 국방, 치안, 소방, 교육 등의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무기, 차량, 컴퓨터 등 수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합니다. 따라서 정부가 존재하는 경제에서 국민 소득 항등식은 이렇게 됩니다. 한 경제가 생산한 재화나 서비스는 민간이 소비(C) 또는 투자(I)하거나, 정부가 구매(G)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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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C+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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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식은 아래와 같이 쓸 수 있습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아래 식의 우변은 저축을 말합니다. 정부가 있는 경제에서 저축은 민간과 정부가 쓰고 남은 양이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남은 양은 투자로 이어져서 언제나 저축과 투자는 균형을 이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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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Y-C-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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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무슨 돈으로 그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할까요? 바로 세금(T)입니다. 세금의 존재를 이 식에 명시적으로 드러내면 저축은 아래와 같이 민간 저축과 정부 저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국민들은 정부에 세금을 내어야 하니 벌어 들인 소득을 전부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쓸 수 있는 돈은 세금을 떼고 남은 소득이 됩니다. 이를 가처분 소득(Y-T)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민간 저축(private saving)은 가처분 소득에서 소비하고 남은 것이 됩니다(Y-T-C). 한편 정부 저축(public saving)은 거두어 들인 세금에서 쓰고 남은 것이 됩니다(T-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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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underbrace{(Y-T-C)}_{\text{private saving}}+\underbrace{(T-G)}_{\text{public sa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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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식은 정부가 거둔 세금을 다 쓰지 않고 남기든, 빚을 내서 거둔 세금보다 더 많이 쓰든, 저축과 투자는 어떻게든 맞아 떨어진다고 말합니다. 정부가 세금을 얼마나 거두어 들였는지도 상관이 없습니다. 민간의 저축이든, 정부의 저축이든, 저축은 투자로 이어지게 되고 이 과정에서 이자율이 자유롭게 움직여서 저축과 투자는 균형을 이루게 됩니다.
재정 정책
재정 정책은 세금이나 지출의 양을 조절하여 경제를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나가려는 정부의 정책을 말합니다. 정부 지출 G가 늘어나면 경제에 어떤 변화가 올까요? 일단 G가 늘어나는 만큼 정부 저축 T-G는 감소합니다. 민간 투자로 이어지는 정부 저축이 줄어 들기 때문에 투자도 같이 줄어야 합니다. 투자가 줄어 들 수 있는 이유는 저축이 감소하면서 이자율이 상승하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정부 지출의 증가는 민간 투자의 감소로 이어집니다. 이를 두고 정부 지출이 투자를 밀어 내었다고(crowd out) 합니다.
정부가 세금을 줄이는 경우는 직관에 살짝 반하는 결과를 가져 옵니다. 세금이 줄면 투자가 늘어날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고 합니다. 정부 지출 G가 그대로라면 세금 T가 줄어 들기 때문에 정부의 저축 T-G도 줄어 들게 됩니다. 대신에 사람들의 가처분 소득이 늘어나기는 하죠. 하지만 소득이 늘어나면 소비도 늘어 납니다. 지갑이 두툼해지면 씀씀이도 커지는 거죠. 늘어난 돈을 전부 저축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정부 저축이 줄어든 만큼 민간 저축이 늘어나지는 않기 때문에 경제 전체적으로 저축이 감소합니다. 저축이 감소하면 이자율이 오르고 결과적으로 세금의 감소가 투자를 밀어 내게 됩니다.
기사 읽기: 민생회복지원금 ‘코스피 5000’ 마중물 될 수 있을까
이번 정부가 경제 회복과 소비 진작을 위해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추진 중이라고 합니다. 이번 정부 지출의 규모는 대략 20조원이라고 합니다. 세금을 더 걷지 않을 거라면 결국 빚을 내어서 재원을 마련해야 합니다. 정부 저축의 감소가 일단 국채 발행의 증가로 이어지는 것이죠. 증가하는 국채만큼 자금의 공급은 줄어 들면서 이자율은 상승 압력을 받고 민간 투자는 감소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기사에서도 이 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변수는 금리다. 정부는 민생회복지원금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약 19조 8000억 원의 국채를 추가로 발행할 방침이다. 대규모 국채가 시장에 풀리면 시중금리를 끌어올려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경기부양 효과를 반감시킬 가능성이 있다. 실제 민주당 집권과 그에 따른 추경 기대가 본격화된 5월 이후 코스피가 2500에서 3000까지 오를 때 국채 금리(10년 만기)도 2.5%대에서 2.8%대로 높아졌다.
그런데 과연 정부 지출이 늘어난 만큼 소비는 증가할까요? 이번 지원금은 소비 쿠폰으로 지급됩니다. 안 쓰면 회수되는 쿠폰이니 일단 다 쓰기는 할 겁니다. 하지만 25만원 어치 장 보던 사람이 25만원 쿠폰을 받았다고 50만원 어치 장을 보지는 않을 겁니다. 이는 흡사 세금이 줄어든 만큼 소비가 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지갑이 두꺼워야 씀씀이가 커지는 법입니다. 소득이 낮은 사람들에게만 선별적으로 지원금을 지급한다면 소비 진작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득이 많은 사람들을 포함하여 보편적으로 지원하는 편이 낫습니다. 다만, 이는 소득이 많은 사람을 도와주는 꼴이라, 소득에 따라 지원금을 차등 지급하는 한편 힘들어 하는 자영업자들의 가게에서 쿠폰을 사용하도록 제한하여 소득이 낮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 지출로 소비를 늘리려면 선별적 지원보다 보편적 지원이 효과가 크다는 분석이 많다. 소득이 적으면 정부 지원금이 기존 소비를 대체하는 데 그칠 확률이 크다. 소득이 많을수록 기존 소비에 더해 지원금만큼 더 지출하는 성향이 강하다. 소득 수준별 차등 지급과 함께 사용처를 제한하는 지역화폐 방식으로 지원금을 풀면 소득 하위가 많은 자영업자의 수혜가 커지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참고
- CH 03, MACROECONOMICS, N. Gregory Manki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