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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경제학 #3 - 폐쇄 경제

horust 2025. 6. 20. 12:03

다른 나라와 전혀 교역이 없는 경제를 폐쇄 경제라고 합니다. 물론 이런 나라는 없습니다. 지구 경제는 외계와 교역이 없으니 폐쇄 경제이기는 합니다. 아무튼 모든 나라의 경제는 개방 경제입니다. 하지만 폐쇄 경제를 알고 있으면 개방 경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폐쇄 경제에서 제일 중요한 개념은 저축과 투자는 언제나 균형을 이루고, 이자가 균형을 잡는 핵심 메커니즘이라는 사실입니다. 폐쇄 경제라고 하니 무인도가 바로 생각이 나길래 저축과 투자 그리고 이자율의 개념을 완벽히 폐쇄된 무인도 경제를 상상하면서 이해하여 보고자 합니다.

이자의 역할

태평양을 건너 가던 배가 어마무시한 태풍을 만나 그만 뒤집어지고 말았습니다. 배에 있던 사람들은 다행히 구명선을 타고 무사히 탈출했습니다. 며칠 동안 바다를 떠 돌던 어느날, 구명선은 외딴 무인도에 도착했습니다. 당장 먹을 것은 물고기 밖에 없어 보였습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던 사람들은 바닷가에서 맨 손으로 물고기를 잡아야 했습니다. 하루 종일 일해서 잡은 물고기는 하루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 양이었습니다. 그래도 다 먹어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내일은 그마저도 잡는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운 없는 사람들도 먹고는 살아야 했기에 생선을 빌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루 종일 고생해서 겨우 얻은 생선을 선뜻 내어 주기가 꺼려집니다. 그런데 자기도 늘 운이 좋을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도 언젠가는 생선을 빌려야 할 날이 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생선을 빌려 주고, 돌려 받는 거래가 자연스레 생겨 났습니다. 당연히 그 귀한 생선을 그냥 빌릴 수는 없었고 이자를 쳐주어야 했습니다.

생선이 많이 잡히는 날에는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생선을 빌리려는 사람보다, 빌려 주려는 사람은 많아서 더 낮은 이자라도 받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습니다. 이자가 내려 가다 보니 생선을 내어 놓았던 사람들이 다시 거둬 들이고 하나 둘 떠났습니다. 하지만 생선을 구하는 사람은 늘어 났습니다. 아주 여유롭지는 않았지만 나름 가진 사람들도 생선을 빌리기 시작한 겁니다. 내일이 자기가 고기를 못 잡는 그날일 수도, 하필이면 그날이 이자가 엄청 쎈 날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자가 내려 가면서 빌려 주려는 사람은 조금씩 줄어 들고, 빌리려는 사람은 늘어 났습니다.

반대로 생선이 안 잡히는 날에는 물고기를 빌리는 사람이 훨씬 많아서 더 높은 이자라도 주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습니다. 이자가 오르기 시작하면서 아주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도 높은 이자에 끌려서 자기가 먹을 것을 조금 줄이고 생선을 내어 놓았습니다. 반면에 고기를 구하는 사람들은 오늘은 이자가 높으니 허기를 달랠 정도만 먹거나 차라리 굶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자가 오르면서 빌려 주려는 사람은 조금씩 늘어나고, 빌리려는 사람은 조금씩 줄어 들면서 이자의 상승은 멈췄습니다.

무인도의 삶은 너무나 힘들었지만 사람들은 생선을 주고 받으면서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습니다. 경제학적으로 보자면 생산물이 남는 곳에서 모자라는 곳으로 흘러 갔던 겁니다. 뭔가 잘 흐르지 않는 듯 하다가도 이내 이자가 오르거나 내려서 막힘 없이 잘 흘러 갔습니다. 만약 이자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무인도에는 힘도 쎈데다 성질도 고약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고기를 많이 잡은 날에는 이자를 엄청 올려 버렸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자를 못 내리게 으름장을 놓아서 이자가 내려 가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배가 고파서 반 마리라도 빌려야 하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높은 이자를 받기로 하고 생선을 빌려 주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한 마리도 빌려 줄 수 없었습니다. 아무도 그렇게 높은 이자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 자기가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게 되자 이자를 엄청 내려 버렸습니다. 팔지 않겠다는 사람을 윽박 질러 자기는 낮은 이자로 몇 마리를 빌렸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고기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낮은 이자율로 고기를 빌려 주려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제 잡은 고기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말입니다.

저축과 투자

무인도 경제에서 자기가 잡았지만 빌려 주려는 생선을 저축(saving)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자기가 잡은 것으로는 모자라 빌리려는 생선을 투자(investment)라고 합니다. "저축 > 투자"이면 이자가 내려가고, "저축 < 투자"이면 이자가 올라가서 "저축 = 투자"가 됩니다. 빌린 생선과 빌려 준 생선의 양은 같을 수 밖에 없으니 당연한 결론입니다. 물론 애초에 빌려 주려는 양과 빌리려는 양이 같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이자가 자유롭게 움직여서 이렇게 균형을 찾게 됩니다. 그런데 "저런 걸 투자라고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투자가 이자의 높고 낮음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알겠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투자의 개념과는 다르게 들립니다.

경험이 쌓이면서 고기 잡는 기술이 좋아졌습니다. 물고기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남에게 생선을 빌릴 일도 크게 줄었고, 빌린다고 해도 이자는 생선 10마리 당 1마리면 충분했습니다. 다 먹지 못한 생선이 남아 돌기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물고기 잡이에 나설 필요가 없어진 겁니다. 그러던 어느날 몇몇 사람들이 숲으로 먹을 만한 열매를 따러 가겠다고 합니다. 자기들도 당장 먹고 살아야 하니 일단 생선을 빌려 달라고 합니다. 처음엔 헛탕을 치고 빈손으로 돌아 오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런 날이면 빌려 준 물고기를 돌려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열매를 따러 가겠다는 사람에게는 엄청 높은 이자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귀한 열매를 조금이라도 가져 오는 날이면 그간 못 받은 이자를 받고도 남을 정도였기에 생선을 빌려 주려는 사람은 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위험은 감수할 정도로 생선 생산량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물고기 생산량이 늘어 날수록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은 계속 늘어났습니다. 물고기가 남아 돌면서 물고기를 빌리는 대가가 계속 낮아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어떤 사람은 숲에서 과일을 따고, 산 짐승을 잡고, 또 어떤 사람은 밭을 일구고 야생의 감자를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자율이 같지는 않았습니다. 산 짐승을 잡거나, 감자 키우는 사람에게는 훨씬 높은 이자를 받았습니다. 산 짐승과 싸우다가 다치기도 하고, 몇 달을 키운 감자가 한 번에 모두 죽어 버리는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물고기를 잡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이자율이 낮아졌던 것입니다. 왜 빌린 생선을 투자라고 하는지 이제 이해가 조금씩 됩니다.

한편 모아 놓은 생선이 많아서 굳이 빌리지 않고도 다른 일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남에게 빌려 주고 이자를 받을 수도 있는 생선이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이자가 낮아서 빌려주느니 차라리 자기가 먹으면서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자기에게 생선을 빌려준 셈입니다. 아무튼 생선을 빌리든 아니든 이자율이 낮아질수록 다른 일에 투자되는 생선은 늘어 났습니다. 이렇게 무인도의 사람들은 가난을 벗어나 점점 부자가 되고 있었습니다. 하루에 생선 한 마리도 채 못 먹던 시절을 벗어나 이제는 물고기 뿐만 아니라 산 짐승에 과일과 감자까지 먹고 있습니다. 부유하다는 것은 많은 것을 소비한다는 말입니다. 소비를 하려면 먼저 생산이 되어야 하니 결국 생산이 늘어야 합니다. 그런데 투자없이 과연 생산이 늘어날 수 있었을까요?

가난한 시절 투자는 곧 생존의 문제였습니다. 생선을 빌릴 수 없었다면 날씨가 궂은 다음 날 무리하게 일을 나섰다 파도에 휩쓸렸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시절 투자는 생산량을 증가시키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생산력이 감소하는 것은 막아 주었습니다. 이렇게 모두 죽지 않고 버티면서 경험과 기술은 축적되었고 물고기 생산량은 크게 늘어 났습니다. 아무리 먹을 것이 없어도 사람이 하루에 생선 수십 마리를 먹을 수는 없습니다. 다 먹지 못한 생선은 썩어 버렸을테니 삶을 부유하게 만들어 주지는 못합니다. 남아 도는 생산물이 썩기 전에 어딘가로 흘러 갔기에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자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참고

  1. CH 03, MACROECONOMICS, N. Gregory Mankiw